프로그래머 08 :: 2009/01/3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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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렇게 해서 그는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얼떨결에 다시 시작한 직장 생활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꼭 내세울만한 무언가를 이루리라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무엇을 이루어야 하나?'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그는 어떤 답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만들어야 할 코드 만큼이나, 미래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는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코드가 완성되어 가듯, 그의 인생도 꾸준히 완성되어 가리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새 직장에서 그는 바라던 바를 이루었을까요? 그 이야기는, 차후에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 *
경북에 양성이라는 한 촌동네가 있었습니다. 네비게이션 말고는 아는 이 없을 듯한 이 촌동네의 허이장 댁에서 1978년 허동수라는 아이가 태어납니다. 며느리를 고를 때 엉덩이 크기를 최고 기준으로 삼았을 정도로 손이 귀했던 집안에서 태어난 죄로 오냐오냐 성장한 허동수는, 중학교때까지는 친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무난하게 자랐습니다. 둥글둥글하고 통통한 외모에 걸맞게 착하고 조용한 성품을 지닌 그는 책 읽기를 즐겼는데, 그런 그에게 거는 집안의 기대는 남달랐습니다. 장차 법관이나 학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은근한 바램을 종종 내비쳤으니까요. 그런 탓에, 책이 귀했던 촌이었지만 그의 방에는 이런 저런 책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랬던 그의 삶이 부모님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은 그가 고등학교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시청 소재지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옆집에 살던 친구의 방에서 IBM AT 컴퓨터를 보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가끔 재방송으로 틀어주는 '세계 제3차대전(War Game)' 같은 영화에서나 그와 비슷한 컴퓨터를 볼 수 있을 지경입니다만.)
그 때 부터 그의 독서 목록은 조금씩 남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죄와 벌' 같은 듣기만해도 움찔스러운 책들이 꽂혀 있던 그의 책꽂이에 '마이크로소프트웨어'와 같은 컴퓨터 잡지들이 늘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친구 집 컴퓨터 앞에서 보내게 되는 시간도 늘어갔습니다. 당시 그의 PC방 노릇을 했던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에 뭐 그 친구가 워낙에 조용하고 얌전한 공부벌레라 - 공부는 정말 썩 잘했지예 - 같이 있는게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만서도, 그래도 같은 반 친구라 가끔 컴퓨터를 빌려주긴 했습니더. 컴퓨터를 빌려주면 가끔 제 숙제를 대신 해 줄 때도 있었거든예. 그래서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는 반드시 제 방으로 불렀습니더. 그런데 한 번은 글마가 잡지책에서 무신 프로그램 코드를 오려 온 적이 있었거든예. 그게 분량이 거의 A4 기준으로 여덟페이지 정도였는데, 무슨 프로그램이냐고 물으니까 게임이라는 거라예. 게임은 사서 하면 되는거 아이가, 했디만 그냥 한번 입력해 보고 싶다 안 합니꺼. 그래서 냅뒀디만 정말 한 세시간 정도를 계속 컴퓨터 앞에 웅숭그리고 있는기라.
그런데 글마가 그날따라 일진이 영 꽝이였는지 코드를 입력하고 실행했는데 실행이 안대는기라. 컴퓨터를 껐다가 켜기도 하고, 책에 적힌 코드랑 입력한 코드를 일일이 비교해 보기도 했는데도 당최 문제를 찾을 수가 없는기라. 그 꼴을 보다 내는 그만 피곤해서 먼저 누웠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그떄까지도 계속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입니꺼. 그래서 '인자 대나?' 하고 물었디만, 안된다는 거라. 밤을 꼬박 새아가 그렁가, 눈은 사슴눈깔맹키로 시뻘개 갖구마는...
그렇게 쪼매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드만, 글쎄 키보드를 쾅, 받아뿌고는 씩씩대면서 나가버리더라 말입니더. 나중에 봉께 키보드는 아작이 나 있고... 그래서 마 내도 기분이 상해가 나중에 좀 따짓드만, 그 뒤로는 다시는 우리 집에 안오는기라.
아, 물론 키보드 값은 받았습니더.
그리고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마침내 '문과냐 이과냐'를 결정해야 하는 '결정적 순간'이 도래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당연히 그가 문과로 진학하여 법과대학에 진학할 것으로 믿고 계셨습니다만, 정작 본인이 희망한 곳은 이과였습니다.
"공대에 가가 컴퓨터를 배우고 싶은데예."
그의 소망을 들은 부모님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세대를 낳아 기른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듯, 그의 부모님들도 당신들의 실망을 내색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래, 열심히 해 보그라' 하고 격려를 해 주는 것이 전부였지요.
2년 뒤, 그는 모두의 예상대로 경기도의 한 유명 공과대학에 수석으로 합격합니다.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집안 환경을 생각해서 4년동안 장학금을 받자는 목표를 세우고 하향 지원한 것이 결실을 맺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4년 동안, 허동수는 학비 걱정 없이 (물론 신학기가 오면 책값 걱정은 해야 했습니다만) 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하던가.
졸업식을 앞두고 졸업 앨범을 찾으러 학교로 향하던 그를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택시가 덮칩니다. 결국 그는 두 다리를 못쓰게 되었고, 휠체어 위에서 좌절로 1년여를 낭비하게 되죠. 그의 친구들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동수는 졸업하면 S 전자에 입사하기로 되어 있었죠. 그런데 사고가 나는 바람에... 결국 입사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재활에 시간이 일년 정도 걸렸거든요. 정말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우리는 그 친구에게 뭔가 해 줄 게 없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노트북을 선물해 주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 친구, 4년 내내 학교 전산실에서 숙제를 했거든요. 노트북을 사주면 병상에서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래서 돈을 모았습니다. 교수님들도 돈을 내시고 그래서 꽤 많은 돈이 모였죠. 덕분에, 정말 좋은 노트북을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치료비도 좀 보탤 수 있었구요. 뿌듯한 마음에, 그 노트북을 들고 병문안을 갔습니다. 한 열명 정도 모였었죠. 힘들었을텐데, 우리를 웃으며 맞아주더군요.
첨엔 어떻게 선물을 내밀어야 할 지 몰랐는데, 그 표정을 보니 좀 편한 마음으로 건넬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남몰래 좋아했던 여자 동기가 있었는데, 걔가 선물을 내밀었죠. 포장을 뜯는 그 친구 표정이 순간 환해졌습니다. 우리 모두 '준비하길 잘 했구나...'하고 생각했죠. 하지만 다음 순간, 후회했습니다.
그 때 그 친구가 흘린 눈물을 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그랬을 거에요. 우리도 같이 울었습니다. 울면서 깨달았죠. 우리가 그의 좌절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요. 부끄러웠습니다.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죄의식 같은 것이 들었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학부 4년 동안을 전산실에서 홀로 보낸 거나 마찬가지에요.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