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머 11 :: 2009/02/19 00:01
|
|
- 네 이선화입니다.
* * *
이선화는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남자와 평범한 여자 사이에서 평범한 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평범한 동네에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평범한 성적으로 수도권의 평범한 여자 대학의 미술 관련 학과에 진학하게 되는데, 졸업할 때도 역시 평범한 성적이었습니다. 물론 평범하지 않은 구석도 한군데 있었으니, 그것은 그녀의 나이에 걸맞는 생명력으로 치장된 유난스런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녀 자신도 본인에게 그런 장점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죠.
이선화는 자신의 이름과도 어울리는 수선화라는 꽃을 좋아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1년간의 평범한 백조 생활을 하는 동안 정원 한켠에 수선화를 가꾸는 것을 낙으로 삼을 정도였으니, 그 꽃에 품은 그녀의 애정에는 약간 유별난 데가 있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돌아와서도 정원 앞에 앉을 때는 웃는 얼굴이었으니, 왜 아니 그랬겠습니까. 단순히 이름 탓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엉뚱한 데가 있었습니다.
평범하지만 한편으로는 엉뚱한 그녀가 웹 디자인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된 것도 바로 그 수선화 때문이었습니다. 수선화를 방에 들여놓고자 옥션에서 화분을 고르던 그녀는, 문득 세상의 웹 사이트들이 수선화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게 아니라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녀는 수선화에 관한 웹 사이트들을 네이버를 통해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진짜 후졌다...'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내가 발꼬락으로 만들어도 이것보다는...'
다음날, 그녀는 어머니를 졸라 웹 디자인 학원에 등록합니다. 평범했던 그녀의 일생에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열정이, 일순간에 밀려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육개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을 굳이 가져다 대지 않더라도 그 육개월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뿌듯한 표정으로 학원을 뒤로하는 그녀의 머리에는 CSS, HTML, JavaScript, Photoshop 등등의 오만가지 지식들이 뒤죽박죽된 채로 들어 있었고, 두 팔에는 지난 육개월 동안 정성들여 다듬고 꾸민 웹 사이트 '수선화닷컴'의 디자인 시안이 마치 강보에 싸인 아기마냥 안겨 있었습니다.
네 뭐, 꽤 열성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컴퓨터 전공이 아니라서 첨엔 좀 힘들어 하긴 햇어요. 특히 힘들어 했던 부분이 JavaScript 수업할 때였는데... 프로그래밍 언어를 처음 배운 학생이라 아마 좀 힘들었을 겁니다. 미술 관련 학부를 졸업한 분이라 그런지 포토샵 수업은 잘 따라왔는데, JavaScript 배울 때쯤에는 컴퓨터실에서 살다시피 했죠. 따라다닌 남학생들이 좀 있어서, 자리 맡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웃음)
제 기억으로는 특히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부분이 자바스크립트의 클로저(Closure) 개념이었던 것 같아요. 프로그래밍 경험이 좀 있는 사람들도 그쪽은 좀 헷갈려 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어쨌든 졸업할 때 쯤에는, 자바스크립트도 꽤 능숙하게 할 줄 알게 되었더군요. 가르친 사람으로써, 보람을 느낍니다.
수선화닷컴이요? 네. 그 학생의 포트폴리오였죠. 그 꽃을 굉장히 좋아했나봐요. 그걸 주제로 화원 홈페이지를 만들었으니... 저는 집안에 꽃집 하는 사람이 있나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건 아니라더군요.
그러고보니 그 친구에 대해서 기억나는 게 한가지 더 있는데... 이야기하는 걸 굉장히 즐겼어요. 좀 수다스러웠다고나 할까. 나중에 학생들하고 같이 술을 마시다 옆자리에 앉은 남학생한테서 들은 말인데, 이야기를 지어내기를 좋아했대요.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뭔가 재미있는 주제가 나오면, 꼭 그 주제에 대해 자기가 직접 경험한 듯 말을 풀어내곤 했다더군요. 나중에 알고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인 경우가 많았대요.
그리고 그녀는 포트폴리오를 들고 이 회사 저 회사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다행히 인터넷 홈쇼핑 업체의 웹사이트를 외주제작하고 있던 업체 한군데에서 그녀의 디자인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과년한 딸이 왜 집에서 놀고 있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져서 행복했고, 그녀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어져서 좋았습니다.
평범한 행복이 그녀에게 찾아오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 평범한 행복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회사가 A사에 흡수통합되는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직원들이 전부 수평이동하는 바람에 짐만 들어 옮기면 되는 수준의 우여곡절이었죠. 그리고 A사에서, 그녀는 박시애를 만나게 됩니다. 박시애는 그녀의 첫인상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신입 직원 교육에 들어갔을 때 처음 만났어요. 당차구... 젊어서 그런지 보고 있는 것 만으로 즐겁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쁘더군요. 말도 조잘조잘 굉장히 재미있게 잘하구요. 자기가 디자인했다는 웹 사이트를 보여주길래 봤는데, 그것도 깔끔하니 이뻤어요. 어떻게 보면 본인과 굉장히 닮은 디자인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박시애가 그녀로부터 받은 첫 인상은 평범한 것이었지만, 그녀가 박시애로부터 받은 첫인상은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선화가 입사한지 6개월이 지나 박시애가 자신만의 첫 팀을 꾸렸을 때, 그 팀으로 가게 해달라고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부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