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09/03/19 18:42
[이전 글에서 계속...]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결론은 '우동 한그릇' 처럼 낭만적이진 않았습니다. 당황한 아버지는 아들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고, 아들은 강렬한 통증을 견디지 못해 머리를 부여잡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으니 말이에요. 물론, 다시 일어선 아들은 아버지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고, 자식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했던 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터뜨렸으며, 그와 같이 아침 근무를 보던 젊은 동료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으니, 또 딱히 낭만적이지 않을 것도 없긴 합니다.

어쨌든 김유식은 시험을 성공적으로 잘 봤습니다. 아버지에게 뒤통수를 맞을 때만 해도 뭔가 까먹어 시험을 망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고 합니다만, 도리어 그게 액땜이 되었는지 평소 본인 성적 보다도 결과는 더 좋았습니다. 그 덕에 그의 인생도 꽤 우아하게 풀렸죠. 여엿한 대학생이 된 데다가 아버지와의 관계도 좋아졌으니 대내외적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 진 거에요.

하지만 대학 생활은 그가 생각했던 것 만큼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미적분학이었습니다. 대학 첫 학기 일반 필수 과목으로 선택해 들은 미적분학에서 보기 좋게 C를 받은 그는 당시를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입실론(ㅌ) 아시죠? 그 코딱지보다도 작은 숫자가 나를 그렇게 괴롭힐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죠.

성적표를 받아드는 순간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졸업할때까지 장학금은 애저녁에 글렀구나...' 그리고 그 예상은 졸업할 때 까지 단 한번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를 배신한 것은 미적분학 뿐이 아니었습니다. 선형대수, 공업수학, 이산수학 등등 '수'자가 들어가는 모든 과목에서 그는 C를 받았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잘 했던 과목은, 자료구조나 파일시스템 이론, 운영체제론 같은, 수식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과목들이었습니다. 그런 과목에서 그의 성적은 항상 평균 이상이었습니다. 그를 귀여워하던 한 교수는 (이유는 알수 없습니다만) 졸업식장에서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군요.

대학원 진학은 다시 생각해보는게 좋겠다.

어쩄건, 덕분에 그는 졸업할 때 까지 줄기차게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C가 끼어 있는 성적표로는 언감생심 장학금을 꿈꿀 수 없었던 것이죠. 가끔 학자금 융자를 받기도 했습니다만 그것도 한도가 있어 매번 신세질 수는 없었고, 부친의 월급도 사립 대학교 등록금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저렴하여 도무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방학이 되면 편의점, 공사판, 호프집, 주점, 레스토랑, 커피숍 등등 돈을 주겠다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방학 중에는 항상 입에서 단내가 났죠. 유일하게 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프로그래밍이었는데, 프로그래밍이 아르바이트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해 보질 않았던 것이 이유였어요.

Q: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있었다면?

A: 안경을 쓰게 된 걸 들 수 있겠습니다.

Q: 그게 왜 기억에 남나요?

A: 처음에 사람 구한다길래 레스토랑을 찾아갔더니, 저 보고 무섭게 생겼대요. 그래서 못 쓰겠대요. 해서 집에 와서 거울을 봤습니다. 정말 열심히 봤죠. 제가 고등학교때 싸움질을 좀 하고 다녔잖아요. 그 때 하도 인상을 써서 그런지, 아닌게 아니라 얼굴이 좀 무섭게 변하긴 했더라구요. 그래서 그 때 부터 웃는 연습을 했습니다.

Q: 웃는 연습요?

A: 네. 하루에 십분씩, 거울을 보면서 웃는 연습을 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순해 보이는 인상을 만들려고 애썼죠. 살도 5kg 정도 늘렸습니다. 얼굴이 좀 둥글어지면 덜 무서워 보일까 싶어서였죠. 그래도 충분치 않은것 같아서 안경점에 가서 인상이 좀 부드러워 보일 만한 안경을 추천해 달라고 했죠.

Q: 그래서 지금의 그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쓰게 된 거군요?

A: 네. 그렇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살도 찌고, 좀 선생님같기도 한 인상을 갖게 된 거죠.

그러니, 그의 대학시절을 두 마디 글로 요약하자면, '수학과의 악연'으로 줄일 수 있을 터였습니다. 싸움질 와중에 띄엄띄엄 몰아치기 식으로 한 공부로는 도무지 수학 성적을 올릴 수 없었던 그는 대학에 와서도 수학과는 친해질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입학 당시 품었던 '공대 가면 밥은 굶지 않겠지'라는 근거없는 낙관은 졸업할 때 쯤 되어서는 '설마 수학 못해도 일은 할 수 있겠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네. 그렇게 어영부영 4년이 흘러 그는 졸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남들 하는 대로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나마 남부럽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코딩이라, 그는 여기 저기 프로그래머 일자리를 알아보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자리는 좀처럼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반년 가까이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백수로 지냈죠.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여기저기 '닷컴 벤처'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네, 생겨났었죠. 그것도 정말 많이 생겨났었습니다. 거짓말 좀 보태서, 양재동에서 눈을 감고 코끼리코를 열바퀴 정도 한 다음 멈춰 서서 아무데로나 침을 뱉으면 닷컴 벤처 회사에서 근무하는 프로그래머 신발에 튈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도 직장을 구했습니다.

그냥 구한 것도 아니고 아주 고르고 골라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구인 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고, 사무실로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실 분위기가 영 아니더군요. 웬 독서실 책상이 열 개 정도 나란히 붙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컴퓨터, 그 위에는 모니터가 한 대씩 있었습니다. 완전히 코딩 공장이었습니다. 연구소장 말로는 아직 돈이 없어서 사무실 집기를 못 샀다더군요. 그래서 다음날 출근을 안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또 다른 회사 면접을 보고, 또 출근했습니다. 사무실은 뭐 그럭저럭 깨끗하고 조용하더군요. 책상도 새것이었구요. 그런데 같이 입사한 동기가 오라클 자격증이 있었는데, 노골적으로 그 친구만 이뻐하는 게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다음날 또 출근을 안해버렸습니다. 대신 서점에 가서 오라클 책을 한권 샀죠. 자격증 시험 보려구요.

어쨌든 돈은 있어야 되겠다, 하는 어린 마음에 또 다른 회사 면접을 봤습니다. JSP로 웹 사이트 구축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를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마침 저도 그건 할 줄 알았어요. 입맛에 맞는 친구가 별로 없었는지 연봉도 많이 쳐준다길래 웬떡이냐 하고 냉큼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음날 출근했죠. 동기도 없었고, 같이 일할 프로그래머도 많지 않은 직장이었지만 분위기만큼은 괜찮았습니다. 다들 열심히 하려는 것 같아 좋았구요. 그래서 저의 첫 직장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그 다음날도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요. 그렇게 이상하게 굴었어도 저에 대한 안좋은 소문은 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당시 분위기로는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모두들 대박의 꿈을 꾸느라 정신이 없었고, 저 같은 신출내기 프로그래머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그 정도의 인력이었어요. 가 버리면, 언제 그런 사람이 여기 오기라도 했었느냐는 듯이 잊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저도 그렇고 그 사람들도 그렇고, 뭔가에 홀려 있었던 것 같아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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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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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ushop

    이번글에 첫댓글의 영광이...항상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2009/03/23 10:28 [ ADDR : EDIT/ DEL : REPLY ]
  2. 엇, 낭만고양이님!
    이제서야 이 주소를 보게 되었습니다. 용서하소서 ㅠ.ㅠ
    짧은 시간에 모두 볼 순 없었지만 북마크 해놓고 쭈욱 읽을 참입니다. 재미있는 글이 많네요. ^^

    2009/03/26 12:47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