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래머 18 :: 2009/06/0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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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모두 반갑습니다."
박팀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회의실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는 몰라도,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노래방 마이크를 통해 나오는 소리처럼 울렸습니다.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습니다.
"이제 모두 모였으니, 간단히 자기 소개부터 하죠. 아마 오늘 첨 뵙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 우선 제가 먼저 간단히 말씀드리면, 저는 팀장인 박시애구요. 제 오른쪽에 앉으신 분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남기수, 김유식, 허동수, 이선화, 그리고 오대수씨입니다. 저까지 포함 전부 여섯 분이군요. 우리 팀 이름은... 그게 좀 애매한데요. 네트워크 관리 기술 개발팀이에요. 이름만 들어서는 대체 뭘 하자는 건지 알기가 좀 어렵죠? 사실 저도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건 차차 나아질테니 양해해 주시구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모두를 웃으며 차례 차례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한 분씩 개인 소개를 해 볼까요? 우선 제 왼쪽에 앉은 오대수씨부터."
그리고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제 얼굴은 순간 붉어졌습니다.
"아... 반갑습니다. 오대수입니다. 이 회사에 입사한 지는 일년 남짓 된 것 같습니다. 입사 후에는 김유식 주임과 같이 일을 했구요. 직급은 대리입니다. 주로 해 온 일은... 아마 여러분들도 비슷하실 것 같습니다만, 프로그래밍입니다. 뭐 남들보다 잘 하는 건 아니구요. 그냥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을 정도로 합니다."
그러자 모두들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나도 다를 것 없다는 뜻의, 겸손한 웃음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책읽기, 남 이야기 들어주기 등등입니다. 사실 그동안 먹고 사느라 바빠서 특별히 특기 같은 걸 만들 새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다를 것 같지는 않지만요."
"어떤 책을 좋아하세요?"
박팀장이 물었습니다.
"아... 뭐 그냥 잡다하게 읽습니다. 일 때문에 보는 책을 뺀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 류의 서적을 좋아하는 편이구요."
"결혼은 하셨어요?"
남기수가 물었습니다. 너무 상투적인 질문이다 싶었는지, 그는 다소 겸연쩍게 웃고 있었습니다.
"아뇨. 아직 못했습니다. 역시 먹고 사느라 바빠서..."
내가 헛 웃음을 웃자 모두들 따라 웃었습니다. 역시, '나도 마찬가지 신세요' 하는 듯한 표정들이었습니다.
"프로그래밍 언어는 보통 뭘 쓰십니까?"
허동수가 물었습니다. 프로그래머들끼리 모여 앉으면 한 번 씩은 할 법한 질문이었습니다. 애써 경상도 사투리를 자제하려는 듯 말하고 있었습니다만, 허동수의 말투에는 특유의 억양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뭐... C++하고 Java를 좀 쓸줄 압니다. JavaScript도 조금 할 줄 알고... 다른 언어는 잘 모르구요."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모두들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이선화가 낭랑한 목소리로 자기 소개를 할 때는 모든 총각 사원들의 눈이 빛났습니다. 김유식 주임만 빼구요. 허동수는 아주 진지한 태도로 길게 자기 소개를 했고, 김유식은 아주 짧게 소개를 마쳤습니다. 남기수는 말하는 내내 뭔가 좀 불편한 표정이어서 모두를 의아하게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 할 때는 좀 불편해 하는 성격이더군요.)
모두의 소개가 끝나자, 박팀장은 다시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이제 소개가 다 끝났군요. 다시 한 번, 반갑습니다."
모두가 반갑습니다, 하고 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박 팀장은 웃으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우리 팀은 아주 작은 팀입니다. 우리 회사에서도 이례적으로 작은 팀이죠. 위에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필요한 사람을 그때 그때 충원하던지, 아니면 다시 용역을 주던지 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뭐, 저도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 필요가 있을지를 우선 알아보아야 할 거고, 앞으로 한 달 정도는 그 작업을 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박팀장은 모두에게 몇 장 짜리 유인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 모두들 한 부씩 받으시구요. 우리가 앞으로 진행할 프로젝트가 어떤 프로젝트인지, 그리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간단하게 적어보았습니다. 제가 간단하게 설명을 해 드릴께요. 그런데 그 전에..."
박팀장의 눈길이 김유식에게 가서 멎었습니다.
"김주임님. 이전 팀에 계실때 총무 하셨었죠?"
"네. 맞습니다."
"혹시 이번에도 총무 해 주실 수 있나요?"
그러자 그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네, 얼마든지요."
박팀장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번졌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해결되었군요."
그 말에 모두들 웃었습니다. 약간은 딱딱했던 분위기가 풀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위에서 허락해 줄 지는 모르겠지만, 한 달에 하루 정도는 일을 쉬고 밖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영화를 봐도 되고 밥을 먹어도 되고 아니면 세미나를 해도 되고... 그러려면 회비가 필요한 데 한 달에 만원 정도 총무님이 각출해서 관리해 주세요. 모자라는 돈은 제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조금은 뜻밖이라는 듯이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만,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자. 그러면 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하죠. 대수씨. 프로젝터 바로 앞이신데, 좀 켜 주시겠어요?"
그리고 그녀의 발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회사의 주력 사업 영역에서는 한 발 물러서 있었습니다. 네트워크 장비 관리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었죠. 웹 브라우저를 통해 구현되는 클라이언트와, 웹 서버 위에서 돌아가는 서버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서버는 사용자가 등록한 네트워크 장비에 사용자가 원하는 설정을 내릴 수 있어야 했습니다. 모두들 그런 종류의 프로그램에는 경험이 없었습니다. 관리해야 하는 네트워크 장비라는 것도, 생소하기 짝이 없는 물건들이었습니다. 스위치나 허브 같은 거야 일상적으로 쓰이는 물건들이니 낯설 건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라우터(router) 같은 장비에 이르면 남기수를 제외한 모두가 문외한이었습니다.
"라우터라는 게 뭡니꺼?"
허동수가 불쑥 질문을 던졌습니다.
"라우터는, 인터넷을 서로 연결 시켜주는 장비에요. 가령 허동수씨가 브라우저를 열어 웹 서버에 접속을 하면, HTTP 패킷이 웹 서버로 날아갈 텐데요. 그 패킷을 웹 서버라는 목적지 까지 계속 중계해 주는 것이 라우터가 하는 일입니다. 라우터는 패킷을 만날 때 마다 그 패킷에 적혀 있는 목적지 IP 주소를 보고, 다음에 어느 라우터로 보내야 하는지, 라우터가 아니라면 다음에 어떤 호스트로 보내야 하는지를 결정하죠. 그 덕에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웹 서버에 접속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웹 서버가 보내는 웹 페이지도 그런 식으로 저에게 되돌아 오는 거란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박팀장이 말을 이었습니다.
"아마 생소한 용어들이 많아서 걱정이 많이 되실 텐데, 미리부터 겁먹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데 한 달 정도의 시간은 있으니까, 그 동안 공부하고 대비하면 될 겁니다."
하지만 모두들, 벌써부터 잔뜩 겁먹은 눈치였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이 프로젝트의 공식 명칭은, OLYMPUS입니다. Object layer for management of packet-support systems의 약자죠. 이 프로젝트를 주신 분들이 지은 명칭이라 저도 그 뜻이 정확하게 무언지는 모르는 상태입니다만, 곧 알게 될겁니다. 능력이 워낙 출중하신 분들이라, 여러분들이 저보다 먼저 알게 되실 수도 있구요."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회의실에는 침묵이 감돌았습니다.
"자. 그럼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회식 있는 건 아시죠? 시간은 저녁 여섯 시 반, 장소는 회사 바로 앞 길건너 서울 회관입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