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계속]
커피를 뽑아 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침 일곱시 반이었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을 하고, 메일을 간단히 확인한 다음 기분좋게 식어있는 커피를 들이켰습니다.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온 몸에 배인 간밤 회식의 냄새는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서랍을 열어 미리 챙겨둔 팬티와 티셔츠, 바지를 꺼내 들고 회사 내 샤워실로 향했습니다.
샤워실이라고는 했습니다만, 사실은 세면대 중 한 곳에 샤워호스를 달아둔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래도 뜨거운 물이 나온다는 사실에 감사할 일이었습니다. 나는 머리를 감고,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사무실 한 켠에 비치된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빗었습니다.
자리에 앉자, 간밤의 내음은 사라지고 커피향이 코 속 깊이 밀려왔습니다. 기분 같아선, 어떤 코드든 내 맘대로 주무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두통이 문제였습니다. 다시 서랍을 뒤졌습니다. 타이레놀이 있었습니다. 한 알을 꺼내 커피를 물 삼아 삼키고,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댔습니다. 잠깐 쉬면 두통은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자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정해진 순서도 없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는 지난 일을 좀처럼 잊지 못하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대학시절, 나는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형편의 고학생이었습니다. 김유식과 마찬가지로,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학생이라는 신분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그런 가난하고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혹이 많았습니다. 흔히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다단계 사업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흔히 다단계 사업을 경제적 종교라고 합니다. 종교와 다단계에는 굉장한 유사점이 있습니다. 독실한 종교 신자는 그 교리가 자신의 인생을 훨씬 나은 방향으로 돌려 놓았다고 믿습니다. 다단계 참여자는 그 시스템 덕에 자신의 인생이 경제적으로 개선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힘은 굉장히 강력합니다.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달라졌고 좋아졌다고 믿기에, 기쁩니다. 만나면 누구에게나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못배깁니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인생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나는 누구에게나 그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본질적으로 그런 이야기들은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이 이유없이 침해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모든 지식에는 비슷한 속성이 있습니다. 특히 실행지침(practice)에 가까운 지식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가령 누군가, 코드를 작성하기 전에 테스트를 먼저 작성하면 생산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굉장히 열성적으로 했다고 해 봅시다. 열성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 경험을 성공적으로 나눌 확률은 떨어집니다. '종교 이야기'나 '다단계 이야기'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유사 이래로, 어떤 믿음을 성공적으로 전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묵묵히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마더 테레사가 그랬고, 간디가 그랬으며, 마틴 루터 킹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치를 단돈 만원에 목마른 고학생이 알 리는 없는 노릇. 나는 다단계 때문에 많은 친구를 잃었습니다. 그 중 몇몇은 아직도 내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정도니까요.
그런 생각들이, 숙취로 지끈거리는 내 머리속을 맴돌았습니다. 지금은 멀어진 친구들 얼굴이며, 자취방 한 구석에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쓴 흉물이 되어 버린 전자요들... 그런 것들이 악몽이 되어 나를 괴롭혔습니다.
"대수씨."
선잠에 가위눌려버린 나를 구원한 것은 박팀장이었습니다.
"대수씨. 괜찮아요?"
그 목소리에, 나는 힘겹게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아... 네. 괜찮습니다."
"어디 아픈거 아니에요? 앓는 사람처럼 신음하던데... 식은땀까지 흘리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애써 웃는 나에게 그녀는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어제 술 너무 많이 마셨구나?"
"아 네 좀..."
멋적게 뒤통수를 긁자 그녀가 드링크 한 병을 꺼내어 건냈습니다.
"마셔요. 마시면 속이 좀 편해진대요."
그리고 그녀는 일일이 모두의 자리를 돌며 내게 건낸 것과 같은 드링크를 꺼내어 올려놓았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약국에 들린 모양이었습니다.
[죄송하지만 또 다음 글에 계속...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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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단 보고 찔리네요
2009/07/07 16:59 [ ADDR : EDIT/ DEL : REPLY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
2009/07/07 17:25 [ ADDR : EDIT/ DEL ]다음편 나오길 기다리겠습니다 ^_^
2009/07/14 17:15 [ ADDR : EDIT/ DEL : REPLY ]죄송합니다 늦어서...
2009/07/16 08:58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