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허동수가 물었습니다.
"왜 바꿀라고 그라시는데예?"
"아무래도, 제우스가 네트워크를 잘 모른다는 경우까지 따져보려면 남기수 씨 말고 다른 분들도 참여해보는 것이 옳지 않겠어요? 겸사겸사 브레인스토밍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구요."
팀장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다음에 제우스를 맡은 사람은 저였습니다. 이름을 지었으니, 실제로 제우스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앞으로 나가, 제가 OLYMPUS에 기대하는 바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네트워크에 대해서 잘 모르는, UI 개발 경험이 전부인 프로그래머가 되어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가능한한 모든 개발 API가 하는 일이 분명했으면 좋겠고, API 별로 기능 분담도 확실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클래스로 객체를 만들어 메시지를 보낸다는 식의 패턴 보다는, 웹 서비스 형태의 API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필요하면 API를 호출하고, 그러면 그것으로 끝나면 좋지 않을까요? 아무튼 그런 기분으로 코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제시간에 퇴근해서 헬스장에도 들를 수 있을 것 같구요."
마지막 말에 모두들 키들거렸습니다. 그렇게, 모두들 역할극에 참여해서 자신이 기대하는 바를 말했습니다. 좀 변화를 주고 싶어서, 나중에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OLYMPUS 역할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좀 더 즐거워졌습니다. 가장 웃겼던 것은 허동수가 OLYMPUS 역할을 맡았을 때였습니다. '그런건 못해.' '이봐, 좀 더 생각한 다음에 이야기할 수는 없나?'는 식의 엉뚱한 대답을 해 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두들 즐겁게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자신이 개발자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는 듯 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발자는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서 즐거워했다고 해야 하겠지요.
"자.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칩시다. 선화씨. 오늘 다과도 준비해주고 이것 저것 챙겨줘서 고마웠어요. 모두 선화씨에게 수고했다고 한 마디씩 해 주세요."
팀장이 말했습니다.
"암브로시아를 먹고 넥타르를 마시는 기분이었어요."
유식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화씨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모두들 기분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회의실을 나서는 저의 발걸음도 그다지 무겁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모든 것이 다 잘 풀려 나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때, 제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이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선화였습니다.
"오대리님."
"네. 말씀하세요."
"그런데 암브로시아가 뭐에요?"
3부. 12 업(業)
태초에 컴퓨터가 있었습니다. 그 컴퓨터는 산 만큼이나 크고, 바다 만큼이나 거대했습니다. 사람들은 컴퓨터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희가 가야할 길을 인도해 주소서." 그러나 컴퓨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같은 질문을 했지만, 컴퓨터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 컴퓨터 앞에 서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컴퓨터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저에게 물어주세요."
그리고 빙긋이 웃었습니다. 모두가 그에게서 형언하기 어려운 포스를 느꼈습니다. '선지자다.' '선지자가 나타났어!' 여기 저기서 웅성거림이 터져나왔습니다. 웅성거림이 잦아들 때 쯤, 한 사람이 나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대체 누구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프로그래머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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